2026. 6. 5. 10:40ㆍ아티클 | Article/Issue2. 국내 도시 이슈
서울 공원녹지, 선언에서 실행으로
1. 서울의 녹지가 가진것
서울에는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클라이맥스 무대가 남산이다. 오각형 스타디움, 수만 명의 관중, 그 뒤로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연장이다. 그런데 전 세계 관객은 그 장면을 보며 낯설다고 느끼지 않는다. 산이 도심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도시. 남산 위에 거대한 무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그 인식이 이미 서울의 이미지 안에 있다.
한강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강 너머를 바라볼 때, 폭 1킬로미터에 달하는 강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도시를 잠시 떠난 것 같은 감각을 준다. 저 건너편의 고층 빌딩들이 오히려 멀어 보인다. 강이 너무 넓어서, 도시를 내 안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저만치 세워둔다. 관망(觀望). 이 단어가 정확하다.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서 도시를 바라보는 드문 경험. 그것이
한강의 매력이다. 이것은 서울이 특별히 잘 계획해서 얻은 자산이 아니다. 그냥 여기 있었다. 한강도, 남산도, 북한산도, 관악산도.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 내사산이 도심을 안쪽으로 감싸고, 외사산이 그 바깥을 다시 둘러싼다. 이 도시는 산들의 품 안에 지어졌다.
문제는 이 자산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제작진은 전 세계 관객에게 남산을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남산을 낀 도심의 모습이 이미 서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들은 지금, 없는 자연을 만들려 애쓴다. 콜롬비아 메데진은 콘크리트 도로 위에 72종의 식물을 심어 숲의 구조를 복원하려 하고, 싱가포르는 열대우림의 층위를 모사하는 가로수 체계를 설계한다. 서울은 그 자연의 체계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 이제 이 주어진 선물을 어떤 전략으로 도시의 상징이자 이 도시의 경쟁력의 원천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

2. 서울2040 공원녹지기본계획 전환의 선언, 그 다음 질문
서울시가 2025년 2월, 2040 공원녹지기본계획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조건부 가결했다. 비전은 명확하다. “기후위기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정원도시 서울”. 처음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공원녹지계획의 첫 번째 목표로 법정계획 안에 들어왔다.
이것은 작지 않은 변화다.
서울의 공원녹지 개념은 오랫동안 세 단계를 거쳐왔다. (모든 도시가 그러하다.) ‘공원이 있어서 좋다’는 시대에서 ‘아름답고 함께 만드는 공원이 있어서 좋다’로, 그리고 이제 ‘이 녹지가 도시와 우리 삶에 실제로 어떻게 기여하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의 시대로. 이번 계획은 그 세 번째 질문을 처음으로 공식 문서 안에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동안 서울의 공원녹지계획은 면적의 언어로 말해왔다. 몇 헥타르, 몇 퍼센트, 1인당 몇 제곱미터. 이번 계획은 그 언어를 바꾸려 한다. 양적 확충에서 질적 제고로. 공원 개수가 아닌 생활권 단위 서비스로. 내사산과 외사산, 남북녹지축과 동서한강축을 잇는 ‘서울 초록길’이라는 이름의 위계적 녹지 네트워크도 구체화됐다. 행정 언어에서 삶의 질을 위한 서비스 언어로의 전환이다. 탄소흡수량 목표도 수치로 제시됐다. 공원이 ‘기후 인프라’로서 계획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그 자체가 이 계획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다.
이번 계획에서 특히 주목할 변화 중 하나는 건축물 내 녹지의 위상이다. 개발 시 건물이 조성하는 녹지의 기준을 높이고, 이를 충족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이 강화됐다. 옥상정원, 벽면녹화, 공중 테라스 형태의 입체정원이 그 핵심이다. 이는 단순한 조경 요소를 넘어 도시 경관 자체를 바꾸는 시도다. 용산 개발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지에 이 기준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는 이 계획의 실제 효과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건물이 녹지를 품고 하늘을 향해 쌓여가는 도시의 모습은 기존 서울의 스카이라인과는 다른 경관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이 선언이 실행과 관리의 정교한 지침 없이 운용된다면, 자칫 콘크리트 개발의 높은 용적률을 위한 면죄부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우려는 선언을 멈추게 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과 관리의 기준을 더 정교하게 다듬으라는 절실한 요구로 읽어야 한다. 어떤 녹지를 인정하고, 어떤 기능을 측정하며, 인센티브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 이 질문들이 계획의 선언을 실질로 만드는 핵심이 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 목표가 계획 안에 명시된 것도 인상적이다. 이번 계획이 제시한 탄소흡수 목표는 22만 톤으로, 서울 연간 배출량(약 4,500만 톤)의 0.5% 수준이다. 이 숫자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녹지의 탄소 기여가 구조적으로 제한적이라는 건 세계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어떤 수종을 심는가. 어떤 토양 위에 심는가. 교목 하나를 심는가. 아니면 층위를 설계하는가. 녹지가 우리 삶과 이 도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묻기로 했다면, 그 기여를 측정하는 방법도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을 때 수치는 목표가 아니라 장식이 된다.
녹지축도 같은 지점에 서 있다. 지도 위에 선을 긋는 것과 그 선을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사산을 잇는 초록길이 선언됐다면, 그 다음 질문은 단순하다. 그 길을 지금 걸을 수 있는가. 경사는 연결되는가. 단절 구간은 어디인가. 포장은 투수성인가. 계획이 서비스를 지향한다면, 서비스의 품질을 만드는 구체적 조건들이 뒤따라야 한다. 생활권 단위라는 개념이 행정 단위에 머물지 않으려면, 그 권역 안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 계획이 의미 있는 전환점인 것은 분명하다. ‘이 녹지가 도시와 우리 삶에 실제로 어떻게 기여하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을 꺼내든 것만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음 단계의 요구가 높아진다. 프레임을 바꾼 계획이 실제 녹지의 기능을 바꾸려면, 선언은 정교한 방법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관점으로 다른 도시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이 질문과 함께 다른 도시들의 녹지계획을 살펴보았다. 같은 전환의 문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실행하고 있는가.
3. 주요 도시 녹지계획 트렌드
공원의 언어에서 인프라와 체계의 언어로
세계 주요 도시들의 녹지 전략은 지난 수십년 사이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공원을 만드는 것에서, 공원이 기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녹지 면적을 늘리는 것에서, 개발 행위 자체가 녹지를 만들어내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이러한 전환을 다섯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 흐름: 개발 행위에 녹지 품질을 부과한다
런던은 2021년 Urban Greening Factor(UGF)를 도입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신규 개발 허가 조건에 녹지 기능 점수를 부과한다. 주거 개발과 상업 개발이 다른 기준을 가지고 각 점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점수는 면적이 아닌 기능으로 산정된다. 투수성 토양 위의 교목이 콘크리트 화분 위의 나무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 지피식물과 관목이 층위를 이루면 점수가 올라간다. 런던은 이 도구를 통해 도시가 개발될수록 녹지의 질이 함께 높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파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파리시 도시생태청(Agence d’Écolo\-gie Urbaine)이 개발한 BiodivScore(바이오다이브스코어)는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의 생태적 품질을 수치로 산출하는 자가평가 도구다. 이 도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평가의 시점에 있다. BiodivScore는 개발의 사후 평가가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생태 품질을 수치로 반영하는 체계다. 4개의 평가 기준착공 전후 생물서식 잠재력, 설계 단계에서의 생태 통합, 시공 영향 최소화, 지속가능한 관리 등이 하나의 점수로 통합된다. 녹지가 준공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흐름: 수종과 층위를 과학적으로 설계한다
콜롬비아 메데진의 녹지 회랑(GreenCorridors) 프로젝트는 2016년에 시작됐다. 도시 내 주요도로 36개 회랑을 대상으로, 72종의 수종을 기능 기준으로 선별했다. 선택의 원칙은 단순했다. “기능적 용도가 있는 토착종”이어야 했다. 기준은 세 가지였다. 미세먼지 흡착력, 야생동물 먹이 제공 여부, 생물다양성 기여도. 심미가 아니라 기능이 수종을 결정했다. 실제로 선정된 수종 중 망고(Mangifera indica)는 천식·기관지염을 유발하는 PM2.5를 흡수하는 능력이 6개 비교 수종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곧 대기 치료제를 배치하는 일이었다. 결과는 3년 만에 나타났다. 평균 기온 3.5도, 표면온도 10.3도 저감, 급성 호흡기 감염율이 인구 천명 당 159.8명에서 95.3명으로 떨어졌다. 또한 150명의 시민 정원사와 15명의 전문 산림 엔지니어가 상시 관리 체계를 맡고 있다.1)
싱가포르의 NatureWays(네이처웨이, 혹은 자연생태로) 는 도로 식생을 열대우림의 층위 구조로 설계한다. 교목이 캐노피를 이루고, 관목이 중층을 채우고, 지피식물이 바닥을 덮는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숲의 구조를 도로 위에 재현하는 것이다. 캐노피 층에는 열대우림의 우점종인 교목을 심어 새들의 영역이 형성된다. 중층은 기존 가로수가 채우며 곤충식성 조류와 나비의 서식 공간이 된다. 하층의 열매 공급 소교목과 꽃 피는 관목은 과식성 조류와 나비에게 먹이 공급처가 된다. 이 연속된 층위는 단순한 미화 식재가 아니라자연보호구역과 도심 공원을 잇는 야생동물 이동 경로(ecological corridor)로 기능한다. 기온 저감, 야생동물 이동 경로 확보, 대기오염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다. NParks(National Parks란 뜻으로 국가공원)는 2024년 기준 240km에 달하는 54개 노선을 운영 중이며, 2030년까지 300km로 확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2) 모든 가구가 도보 10분 이내에 이 녹색 연결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시 전체 스케일의 생태 인프라다.

세 번째 흐름: 운영과 모니터링을 개발과 묶는다
도쿄의 입체녹지 제도는 개발 인허가 단계에서 녹지 조성을 의무화하고, 조성 이후 운영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관련 조례에 명시되어 있다. 도쿄는 「자연의 보호와 회복에 관한 조례」3)를 통해 1,000㎡ 이상 개발 시 녹지 조성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시공 완료 후에는 녹화완료신고, 녹지관리계획서, 녹지관리상황보고서의 3종 의무 서식을 통해 개발자가 조성 이후 녹지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입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공에게는 보고 징수 및 현장검사 권한이 부여되며, 위반 시 벌칙 규정이 작동한다. 심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지를 개발자가 책임지는 구조다. 필자가 방문하여 인터뷰 했던 도쿄 교바시역 근처 도쿄스퀘어가든 빌딩도 입체녹화부분을 매월 정기적으로 녹지관리회사와 함께 유지관리에 노력하며 연계된 공간에는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싱가포르 도시개발청(URA)은 2009년 고층 건물이 밀집된 도심 환경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녹지를 조성하기 위해 ‘도시 공간 및 고층 건물 조경(LUSH)’ 프로그램4)을 도입했다.
이는 밀도높은 개발로 인해 도심 녹지가 파괴되지 않도록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이는 “개발 시 녹지 손실 없음” 원칙을 통해 개발 전후의 녹지량을 총량으로 관리한다. 어디선가 녹지가 줄어들면, 다른 곳에서 반드시 보충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관리 운영 중이다.



네 번째 흐름: 도시 구조 자체를 녹지로 바꾸다.
바르셀로나의 수퍼블록(Superilla)전략은 앞선 세 흐름보다 한 단계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녹지를 어디에 어떻게 심을 것인가가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 지구에서 보행자에게 허용된 공간은 전체 공공 공간의 약 25%에 불과했고 나머지 75%는 자동차가 점유한다. 바르셀로나 수퍼블록 프로젝트는 이 비율을 되묻는다.
수퍼블록 개념은 3×3 블록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내부 차도의 통과 교통을 차단하고, 그 공간을 녹지·광장·놀이터로 전환하는 것이다. 차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차의 영역을 재획정하는 것이다. 외곽 도로는 통행 기능을 유지하고, 내부 골목은 사람의 속도로 돌아간다. 이미 조성된 수퍼블록에서 보행 공간은 58,000㎡ 증가했고, 불투수 아스팔트 비율은 99%에서 85%로 낮아졌다. 신규 수목 400그루가 식재됐고, 녹지 면적은 11,000㎡ 늘었다. 여름철 표면온도는 5도 저감 효과가 실측됐다.5)
결과는 기온 데이터보다 먼저 거리의 풍경에서 나타났다. 아이들이 차도였던 곳에서 뛰고, 노인들이 그늘 아래 앉고, 작은 장터가 열린다. 녹지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도시활동들이 되돌아온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이 모델을 도시 전역 503개 구역으로 확대해 도심 내 도로 공간 100만㎡를 녹지·보행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을 2030년 목표로 삼고 있다. 추가 녹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공간의 쓰임을 바꾸는 구조를 설계했다.6)
수퍼블록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녹지 부족이 토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도시 안에는 이미 충분한 공간이 있다. 다만 그 공간이 잘못된 용도로 점유되어 있을 뿐. 녹지 계획이 교통 계획, 공간 재편 계획과 통합될 때 비로소 가능한 접근이다.


다섯째 흐름: 공원이 도시를 구한다.
최근 여러 도시에서 스펀지 도시(Sponge City) 접근을 실제 프로젝트로 전환하고 있다. 이 개념은 녹지를 빗물 인프라로 통합한다는 점이다. 1998년 양쯔강 대홍수, 2012년 베이징 홍수 등 반복되는 재난을 관찰한 중국 조경학자 위콩지안의 질문에서 시작된 개념이라고 한다. 이 질문의 답은 도시가 물을 받아낼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 불투수 포장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빗물의 98%는 땅으로 스미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내린다. 같은 면적의 숲보다 다섯 배 많은 물이 지표를 타고 넘쳐흐르는 것이다. 집중호우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도시 및 녹지계획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스펀지 도시는 이 구조를 바꾼다. 흡수하고, 저류하고, 정화해서 다시 순환시키는 공간의 계획, 그리고 그 대부분은 공원, 광장, 습지, 가로수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공원녹지계획과 밀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네덜란드 노테르담의 물 광장(WaterSquare Benthemplein)은 이 개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3년 개장한 이 광장은 평상시에는 시민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공연이 열리는 공공 광장으로 기능하다가, 집중호우 시에는 자동으로 빗물을 유입해 최대 200만 리터를 저류한다. 저류된 물은 서서히 배출되며 도시 하수 시스의 과부하를 막는다. 녹지와 인프라가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한다.7)
중국은 이 접근을 국가 정책으로 제도화했다. 2014년 국무원은 스펀지 도시를 전국 도시건설 정책으로 채택했고, 현재 70개 도시가 이 기준을 적용 중이다. 우한은 389개 별도 프로젝트를 통해 38.5㎢에 투수성 포장, 빗물 정원, 습지형 생태공원, 녹화 옥상을 의무 조성했다. 목표는 2030년까지 도시 면적의 80%를 스펀지 기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홍수 피해 저감과 도시 냉각이 동시에 발생하는 이 접근은 기후 적응과 도시 쾌적성을 하나의 설계 언어로 묶는다.8)
공원, 광장, 습지, 가로수는 단순한 도시 미화 장치가 아니라 빗물을 흡수하고 하수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는 핵심 인프라다. 이들은 동시에 공기를 정화하고,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도시를 식힌다. 공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휴식처 그 이상이다. 공원녹지는 도시의 장식이 아니라, 도시를 재난으로부터 지키는 시스이라는 것. 현재 앞서가는 도시 속 공원의 변화 흐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4. 서울이 나아가야 할 방향 – 도시가 가진 선물을 전략으로
다른 도시들이 없는 자연을 만들려 애쓰는 동안, 서울은 이미 가진 것이 많은 도시라는 것은 우리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전략으로 만드느냐일 것이다. 이에 다섯 가지 방향을 제안해 본다.
첫째, JUST GREEN에서 QUALITY GREEN으로(풍경의 녹지에서 인프라의 녹지로) - 녹지율이 아닌 녹지 기능에 따른 가중치
녹지율 31.2%라는 목표 수치는 면적을 센다. 그러나 기능 없는 녹지는 녹지가 아니다. 불투수 포장 위에 심긴 가로수는 토양과 단절되어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교목 한 줄만 늘어선 가로는 열섬을 완화하지 못한다. 같은 면적이라도 어떤 수종을 어떤 토양 위에 어떤 층위로 심느냐에 따라 기능이 전혀 달라진다.
서울에 필요한 것은 런던 UGF(Urban Green Factor)의 서울 버전이다. 면적이 아닌 기능으로 녹지를 평가하는 공식 지표. 탄소흡수율, 미세먼지 흡착력, 열섬 완화 효과, 투수성, 생물다양성 기여도를 종합한 녹지 기능 점수 체계. 이 점수가 공원 조성의 기준이 되고, 개발 인허가의 조건이 될 때 비로소 “질적 제고”는 선언이 아닌 제도가 된다.
둘째, 가상의 축에서 체감 가능한 녹지로
서울 초록길은 좋은 개념이다. 내사산과 외사산을 잇고, 남북과 동서로 녹지축을 구성한다는 구상은 도시 스케일의 자연 네트워크를 그린다. 그런데 질문은 하나다. 지금 그 길을 연속적으로 체감하며 걸을 수 있는가?
녹지축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보행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경사가 연결되어야 하고, 단절 구간이 해소되어야 하고, 포장은 투수성이어야 한다. 한강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는 지금도 한강과 도시 사이를 가른다. 이 광폭의 강을 극복하는 축의 현실적 연결은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할까? 선언된 축과 실제 보행 가능 구간의 갭을 좁히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제다. 실제 체감되는 축이 아닌 생태적 의미의 축이라면 그 의미를 구분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개발-조성-운영을 하나의 책임으로 묶는 시스템
지금 서울의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개발이 끝나면 녹지가 조성되고, 조성이 끝나면 관리가 위임된다. 심는 주체와 키우는 주체가 분리된다. 도쿄는 이 구조를 바꿨다. 개발 인허가 단계에서 녹지 조성을 의무화하고, 조성 이후에도 운영 상태를 개발자가 일정 기간 책임지도록 했다. 준공 후 수년간의 생존율을 개발 평가 신청서에도 명시해야 한다.
서울도 이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대형 개발 사업의 인허가 조건에 녹지 기능 점수를 부과하고, 조성 후 5년 생존율과 기능 유지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민간 개발지 내 녹지는 시민이 실제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을 때에만 녹지로 인정하는 것. 조성과 운영이 같은 책임의 선 위에 있을 때, 녹지는 비로소 살아있게 된다.
넷째, 스케일에 따라 세분화된 전략
서울의 자연 자산은 스케일이 다르다. 광역의 산과 한강, 생활권의 근린공원과 가로수, 필지 단위의 옥상과 벽면. 이 스케일들은 서로 다른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얼마전 옥상 녹화 가이드라인에 대한 세분화된 접근은 주목할만 하다.
광역 스케일에서는 접근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내외사산과 한강이 가진 스케일의 힘을 더 많은 시민이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도록, 단절을 잇고 진입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생활권 스케일에서는 기능 품질 기준이 필요하다. 수종과 층위를 설계하고, 투수성 기반 식재를 의무화하고, 메데진처럼 상시 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 필지와 건물 스케일에서는 개발 인허가와 연동한 기능 점수제가 작동해야 한다. 좋은 선언만으로 자본을 움직일 수 없다. 옥상녹화, 벽면녹화, 전면공지의 생태적 처리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될 때, 도시가 개발될수록 녹지의 질이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 들어가 자기집앞, 가게앞, 화단조차 중요하다. 도시를 걷는 순간순간 화려하지 않아도 잘 가꾸어진 환경을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이 녹지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 일 것이다.
다섯째, 도시를 구하는 공원 - 스펀지 도시 전략으로 부터의 교훈
수차례에 걸친 서울 강남 일대의 침수 피해는 기후변화가 녹지 계획의 의제를 바꿔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탄소 흡수와 열섬 완화만이 녹지의 임무가 아니다. 서울은 연평균 1,400밀리미터의 강수량 중 상당 부분이 여름 집중호우로 쏟아지는 도시다. 불투수 포장면으로 뒤덮인 도심은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배수 시스템에 과부하를 건다.
투수성 기반 식재를 녹지 기능 점수에 포함시키는 것은 탄소흡수 논리만이 아니라 홍수 완화 논리와도 맞닿는다. 현재 투수성기반 블록에 대한 이해는 높아지고 개발행위 기준도 잘 정립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공원을 빗물 저류 기능과 결합하고, 저지대 공원에 습지형 설계를 적용하고, 가로 식재를 빗물 정원(rain garden)으로 전환하는 것. 각 공공공간이 녹지제공과 시민의 휴식공간을 일상적으로 제공하면서도 도시의 재난시 그 재난으로부터 도시를 구하는 기능이 탑재되도록. 이런 접근이 실현되면 녹지는 맑은 날의 쾌적함뿐 아니라 극한 기상 이후의 복원력을 담당하는 인프라가 된다. 기후 완화와 기후 극복을 하나의 녹지 전략 안에서 동시에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이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공원녹지계획의 미래일 것이다.
5. 마치며 - 선물을 전략으로
서울의 녹지는 선물이다. 산이 도심을 감싸고, 강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세계 어느 도시도 이런 스케일의 자연을 이미 가진 채로 시작하지 않는다. 2040 공원녹지기본계획은 그 선물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언어로 불렀다. 기후 인프라. 질적 제고. 생활권 단위 서비스. 방향은 맞다. 선언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다음은 도구의 문제다. 기능을 측정하는 지표, 개발에 품질을 부과하는 제도, 조성과 운영을 하나의 책임으로 묶는 구조, 스케일마다 다른 실행 전략. 이것들이 갖춰질 때 지도 위의 녹지축은 걸을 수 있는 길이 되고, 면적의 숫자는 기능의 현실이 된다.
서울이 가진 산과 강은 어떤 도시도 계획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울의 녹지는 출발선이 다르다. 그러나 선물은 꺼내 쓰지 않으면 서랍 안에서 그대로 머문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사가 아니라 전략이다. 이미 있는 것을 측정하고, 연결하고, 시민의 일상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선물을 축복으로 바꾸는 일이다.
1) https://reasonstobecheerful.world/green-corri\-dors-medellin-colombia-urban-heat/
2) National Parks Board (NParks), Nature Corridors and Nature Ways, nparks.gov.sg
3) https://www.reiki.metro.tokyo.lg.jp/reiki/reiki_hon\-bun/g101RG00001367.html#e000001317
4) https://www.ura.gov.sg/Corporate/Guidelines/Cir\-culars/dc17-06
5) Barcelona City Council, Superblock L’Eixample Results (2023)
6) Barcelona City Council, Gaining a million square metres, 2030 Agenda (2021)
7) https://landezine.com/water-square-ben\-themplein-by-de-urbanisten/
8) Urban Transitions Alliance, Building climate resil\-ience and water security in cities: lessons from the Sponge City of Wuhan, China(2020); IWA Publishing, Water Science & Technology88(10) (2023).
김정빈 / bin.kim@bettercitylab.com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한국도시계획가협회 서울지회 부회장
OMA, Foster & Partners 등 해외 도시건축사무소에서 도시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10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 공간 기획을 연구하고 있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운영 총감독을 역임(7년)하며 공간 조성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을 이끌었다.
현재 서울시립대 Better City Lab을 통해 플레이스메이킹 전략과 도시설계 및 공간 활성화 연구와 실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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